첨단 기술이라! 얼마나 그럴싸한 말인가. 자칭 얼리어답터들은 항상 첨단에 대해 떠들기를 좋아한다. 엔지니어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첨단이 어떠니 하면서 자랑한다. 자신감이 부족한 영업 사원들은 첨단이란 단어 뒤로 슬쩍 숨는다. 벤처 캐피탈리스트들은 어디서 주워들은 전문 용어나 그럴듯해 보이는 합성어로 첨단을 내세운다. 첨단이라, 이것이야말로 비즈니스계의 성배라 아니 할 수 없다.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첨단은 정말 근사하고 매력적이다. 딱 한 가지 문제만 빼면 말이다. 정작 고객들은 이 대단한 첨단이란 말에 끄덕도 하지 않는다는 점!
고객들은 첨단 기술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에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다. 고객들은 첨단을 사지 않는다. 그들이 사는 것은 첨단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은행은 현금 자동 입출금기 자체가 좋아서 들여놓는 것이 아니라 노동 비용 감소 때문에 환영하는 것이다. 최종 수요자들인 고객들은 ATM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냥 숫자가 새겨진 플라스틱 카드(이게 첨단인가?)를 집어넣고 에러가 생기지 않게 정확한 숫자를 입력한 뒤 복제가 불가능한 종이(이게 첨단인가?)를 꺼내고 난 다음 거기서 인출한 돈으로 집의 프린터에 넣을 잉크 카트리지를 사러 가고 싶을 뿐이다.
하루에 몇 번씩 팩스를 이용해도 정작 팩스 기계의 작동 원리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메일이 어떤 경로로 전해지는지 몰라도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CAT(단층촬영)스캐너가 어떻게 스캔을 하는지, MRI가 무슨 말의 약자인지, 핸드폰은 어떻게 수신이 되는지를 골똘히 고심하고 정말 알고 싶어 잠 못 이루는 사람은 없다. 고객들은 그저 버튼을 누르고 먼 곳에 있는 가족과 통화하고 싶어할 뿐이다.
회사에서도 이 첨단을 어려워하고 마케터들도 첨단을 소화하느라 애를 먹지만 정작 고객들은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가끔 어떤 직원들은 고객들의 질문이나 반대 의견을 피해가기 위해 일부러 기술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신제품의 특징을 앞세운다. 왠지 고객보다 더 많이 아는 척을 해야 기 싸움에서 이길 수 있고 흥정을 할 때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여기 MRI 기계를 종합 병원에 팔려고 하는 두 명의 세일즈맨이 있다. 둘 다 모두 그 분야 1,2위를 다투는 기업에서 일한다. 이 두 사람 모두 병원의 의사진과 관련 분야 사람들과 성공적으로 1차 미팅을 마쳤고, 앞으로 병원의 최고 경영자, 과장급 의사, 최고 재무 관리자, 기술 관리자와 만날 예정이다. MRI 가격은 대략 300만 달러에서 400만 달러 정도 한다.
그런데 이 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독특한 배경을 갖고 있었다. 과장급 의사만 제외하고 의사 출신은 아무도 없었으며 다른 병원이나 의료 관련 기업들을 경영해 본 사람도 없었다. 특히 CEO는 호텔과 오락 산업에 종사해 온 인물이었다.
첫 번째 세일즈맨은 자신의 회사와 MRI기계, 이른바 '토털데크(total deck)'를 중심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이름만 그럴싸한 '토털 데크'는 100장이 넘는 파워포인트 자료로, 그 안에는 전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공장 수와 직원 수, 박사 출신 연구진 숫자와 회사의 장점, 영상 과학에 대한 정보들이 아주 자세하게 실려 있었다.
'저걸 처음부터 다시 듣느니 귀신한테 잡혀서 고문을 당하는 게 낫겠군.'
CEO는 하품을 참으며 생각했다.
두 번째 세일즈맨은 얇은 노트북 하나를 갖고 앞에 섰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미팅을 시작했다.
"제 프레젠테이션은 30분밖에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의 목표가 워낙 간단하거든요. 이 병원이 우리의 MRI에 투자를 하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가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쉽게 감이 잡히십니까?"
CEO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세일즈맨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병원의 기술 쪽 전문가들은 이미 다른 고객들이 사용해 보고 남긴 리뷰를 읽어봤을 테고요, 기계가 작동하는 것도 직접 보았습니다. 또한 의사들도 우리 기계의 화면 해상도와 함께 딸려오는 구성폼에 만족하셨고요. 처음이지만 어렵지 않게 작동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과장님?"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일즈맨은 프레젠테이션을 계속했다.
"이런 타입의 MRI를 사용한 병원들의 평균 순수익은 1회당 1,800달러였습니다. 다른 유명 병원들이 이 기계를 꾸준히 사용해서 수익을 얼마나 최대화하는지 알고 싶으십니까? 또 이 병원은 1년에 총수익을 어느정도 기대하고 계십니까?"
CEO가 몸을 일으켜 바로 앉았다.
세일즈맨은 모인 사람들에게 파일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이 자료는 보험 회사와 의료 보험 상환금이 병원 수익에 미칠 영향을 예상한 견적으로, 최소로 잡은 보수적인 자료와 최대로 잡은 공격적인 자료 두 가지입니다. 문제는 병원에서 이 MRI를 최소 1주일에 30번이나 1년에 150번은 이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2,700,000달러의 수익을 예상할 수 있죠. 기타 운영비는 아까 그 견적서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17개월 정도 지나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여기 나와 있는 것보다 환자들을 더 많이 받으면 훨씬 더 벌 수 있겠는걸?'
그렇게 생각한 CEO는 말을 꺼냈다.
"하지만 400만 달러는 너무 큰돈이군요. 지금 당장은 현찰이 부족한데요."
세일즈맨이 대답했다.
"저희 회사가 자금 마련에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아니면 할부로도 지급이 가능하고요."
CEO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일즈맨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MRI기계를 사는 데 1주일에 54,000달러가 들죠. 동의하신다면 내일 당장 재무 부서에 신청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4주후면 기계를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진행해도 될까요?"
세일즈맨은 CEO가 고개를 다시 한 번 끄덕일 때까지 잠자코 있었다.
세일즈맨이 나간 후 CEO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그런데 이 기계가 정말 환자들의 장기나 뇌를 볼 수 있단 거요? 거 참 신기하군."
첨단 기술에 의존하려 해선 안된다. 그 자체로 너무나 새롭고 놀라워 그것만 제대로 알려도 물건이 저 혼자 날개 돋친 둣 팔릴 것 같다 해도 말이다. 저절로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것은 없다. 신제품 성공 비결의 2퍼센트는 기술이고 나머지 98퍼센트는 마케팅이다. 제 아무리 따지기 좋아하는 소비자라 해도 대개 기술적인 면은 건너뛴다. 고객들은 그 제품이 자신이 기대하는 특성과 품질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그렇지 않을 시에는 구매하지 않는다. 간단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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